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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낯익은 동식물과는 전혀 틀린 기괴하고 하등한 무리들. 사람들은 그런 이형의 무리들을 두려워했고 언제부턴가 그것들을 가리켜 「벌레」라 불렀다. 벌레로부터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벌레를 지키는 "충사", 토키사와 이사오와 아사리 사요의 여정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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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방영 | 26화

충사

蟲師

 무릇 불길하고 꺼림직한 것. 하등하고 기괴하여 흔한 동식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여겨지는 것. 예로부터 사람들은 그 이형의 무리에 대해 두려움을 품어왔고 언젠가부턴가 이들을 한데 묶어 ‘벌레’라 칭하게 되었다. 1

*

 계절이 바뀌는 건 이야기 한 단락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연속성을 가진다. 차가운 공기에 조금씩 따듯한 기운이 스미고, 얼었던 땅이 녹아 푸근해지는 것이 그렇다. 겨우내 숨었던 순이 나뭇가지에서 새싹으로 맺히고, 햇살은 공기를 데우듯 완만하고 부드럽게 퍼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봄은 도통 그렇지 않았다. 초여름이라도 된 것처럼 산에는 물기가 무겁게 내려앉았고, 푸른 나뭇잎에는 새벽이 아닌데도 이슬방울이 천천히 떨어져 내기기도 했다. 다급히 올라간 온도와 가득한 습기에 숨을 내쉬기도 어지간히 불편해진 터였다. 그런 산을 나아가는 두 사람이 있다. 발아래를 조심하면서도 서로의 간격은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형세. 

 “벌써 여름이라도 온 것 같네.”

 “이제 막 겨울을 벗어난 것뿐이지만요.”

 “이 산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지 않아?”

 ‘시모야마에서는…’하며 비슷한 말을 꺼내려던 상대는 입가에 미소만 두고 짧게 끄덕였다. 

 주변의 짙은 녹음 속에서는 풀벌레들이 끊임없이 소리를 내고, 나뭇 사이로는 바람을 대신해서 온갖 작은 생명들이 꿈틀거렸다. 생명이 충만한 공간임을 느끼는 동시에 기묘한 위화감이 든다. 나갈 수 없는 공간에 들어섰다는 감각이다. 

 “그리고 이 산에서 나갈 수 없는 것 같고요.”

 “제대로 시도해 볼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 해봐요.”

 어쩐지 시험하겠다는 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상대는 무감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무던함처럼 빠져나갔으면 좋으련만 어쩐지 나가려는 의지를 가질수록 산속의 물기는 안개로 모습을 바꾸고야 만다. 내리쬐던 태양도 어느새 기운 달로 바뀐 것을 뒤늦게 눈치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네요.”

 위기감 없는 목소리가 하루를 단념하듯 말한다.

 “계속 움직이면 체력 문제도 있으니까.”

 하늘을 올려다보면 트여있는 시야로 은하수 같은 생명이 지나고 있다. 별들이 끝없이 흩뿌려진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존재들인 걸 안다. 하지만 그 아래는 평범한 삶이 있어서 늦은 잠이라도 청할 수밖에. 익숙하게 야영 준비를 한다. 딱딱하게 뭉친 모포는 몸을 감싸기 보다 고작 덮어둔 것에 가깝다. 등이 땅에 닿아 불편하지만, 충사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일. 그나마 흔치 않은 일이 있다면 서로의 숨이 근처에서 내쉬어지고 있는 일일까. 남자는 가까이 오라는 말보다 팔을 붙잡아 당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잘 자요.”

 “잘 자. 이사오.”

*

 두 사람이 눈을 뜬다. 주변은 어제와 같은 여름은 어디 가고 황량한 땅이 보인다. 그 땅 위로는 늪이 자신의 몸을 끌고 간 흔적만이 지저분하게 남아있다. 공간 자체를 들어낸 것 같으면서도, 두 사람 근처의 낮은 풀들까지는 안전하게 남아있다.

 “기억났어.”

 “뭐가요?”

 “우리가 만난 벌레 말이야. ‘여름 늪’이라고 하던가.”

 “어떤 늪은 계절을 삼킨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런 식인 줄은 몰랐네요.”

 “무사히 넘어갔으니 다행이지.”

 “글쎄, 우리는 여름에 속한 사람들은 아니었나 봐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속하는 사람들일까? 자연스럽게 그런 의문이 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답을 누구도 입에 담지 않는다. 다만  발아래를 살피면서도 서로의 간격은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게 함께 걸어갈 뿐. 한참을 걷다 보면 다시 봄. 계절이라는 것은 언제나 연속성을 가지며… … 

1 우루시바라 유키(2006), 『충사』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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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정보

​출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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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키사와 이사오
時決 潔
치즈, 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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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리 사요
亜紗里 小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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