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시에서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세 시간. 버스정류장의 종점에 내려 보이는 터널을 걸어 통과하면 마을이 하나 나온다. 일부러 숨겨두기라도 한 것처럼 숲속에 파묻힌 시골 마을이 유명해질 이유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데도 불구하고, 이 마을은 아는 사람 사이에서는 소소하게 이름을 날리고 있다. 누군가 말할 때는 민간 신앙을 토대로 한 종교가 지배한다고, 다른 누군가 말할 때는 일제강점기 중 일본군이 몰래 숨겨둔 보물이 존재한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인체 실험이 자행된 실험장이라고도 한다. 고작 쉰 명도 되지 않는 인구수에 비하면 과분한 명성이다.
이 마을을 찾는 외지인은 꾸준히 있었다. 무엇을 목적으로 했는지는 매번 달랐어도. 대학생, 기자, 탐험가…… 누가 되었든 들어온 수와 나간 수는 같지 않다. 이제는 소문이 하나 더 생길 참이다. 외지인을 잡아먹는 공동묘지. 밝히지 못한 수수께끼가 잠든 마을.
*
“자율체험학습? 요즘 고등학생들은 그런 것도 하나?”
“네. 저희 학교가 조금 특이하기도 해요.”
“리네.”
“아이, 참. 상하 선배도. 학교 욕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자랑이죠.”
“그것 때문에 부른 게 아니다.”
“그래요?”
평범한 가정집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정도로 소박한 민박의 현관에 단출한 여행 가방을 내려둔 두 사람은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품을 줄이지 않은 마이며 조끼를 꼬박꼬박 챙겨 입은 게 전형적인 모범생들로 보였다. 숨기는 일도 없이 가슴께에 매달아 놓은 명찰에는 ‘고상화’와 ‘미리네’라는 이름 석 자가 떡하니 쓰여 있어 자기소개 없이도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들의 이름을 먼저 불렀다. 검은 머리의 키 큰 남학생이 상화, 그 옆의 하얗고 작달만한 쪽이 리네.
당장 두 사람을 붙잡은 것도 초면의 무리였다. 마찬가지로 민박에 머무른다는 외지인. 고등학생 둘에 비하면 여문 태가 나는 얼굴들이 흥미를 숨기지 못하고 이것저것 말을 붙여왔는데, 상화도 리네도 그런 것을 싫어하지 않는지 곧잘 대답을 내놓아 대화가 제법 무난하게 이어졌다. 두 사람보다 나흘 먼저 와 마을의 보물을 찾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는 게 대학생들의 이야기. 그에 리네가 ‘자율체험학습’을 들먹인 게 당장의 일이었다.
어른도 없이 고작 둘이서 구석진 마을까지 찾아와 한다는 게 체험학습이고,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게 목적이라며 유창하게 늘어놓는 리네는 유순한 표정으로 어른들의 환심을 사기에 딱 좋은 태도였다. 양쪽으로 올려 묶은 흰 머리카락은 고등학생이라기에는 조금 어린 느낌을 풍겼기 때문에 더 그랬고. 반면 그의 선배를 자청하는 상화는 시종일관 과묵하고 태도가 정갈했다. 반장쯤 되나.
“학년도 다른데 친한가 보네.”
“어렸을 때부터 알았거든요.”
“소꿉친구?”
“그런 거죠.”
“오, 우리도 그런 녀석들이 있지. 서로 너무 오래 봐서 질린다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저러다 결혼까지 해.”
“아, 오빠! 그런 소리 좀 하지 말라니까.”
“내가 틀린 말 했나. 나정이 너 자꾸 그러면 종훈이 운다?”
“이종훈이 들으면 나보다 질색하면 했지 덜하지도 않을걸?”
장난 섞인 대화에 상화가 입을 열었다. “그분도 같이 오셨습니까?”
“그래, 그런데 몸이 안 좋아서 누워있어. 마을 사람들이 신벌이니 뭐니 떠드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몸살이다.”
“신벌이요.”
“걔는 보물은 찾지도 않고, 여기 교주가 수상하다고 혼자 파고들었거든. 아~주 독실하셔서 이런 민간 신앙을 별로 안 좋아해. 그러다 앓아 누우니까 마을 사람들이 좀 밉게 보는 거지.”
“그래도 곧 이 마을의 비밀을 찾은 것 같다고 신이 났잖아. 비밀이라면 보물 있는 곳도 찾는 거겠지?”
과연 곳곳에 종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문으로 쓴 경문이나 기묘하게 생긴 가면은 이유 없이 가지고 있을 만한 것들이 아니라, 종교적 이유가 있다고 하면 차라리 이해가 갔다. 마을의 안쪽 구역은 이 가면을 쓰지 않으면 출입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끼어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신벌이, 어쩌니. 리네가 설명을 흘려 들으며 한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역신교’. 종훈이 비밀을 풀어낼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고등학생들은 그 말에 충분히 구미가 당긴 모양이었다. 상화가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종훈 형께도 인사드리고 싶은데요.”
“아, 그럴래?”
“깨어 있는지 먼저 보고 올게.”
나정이 먼저 몸을 돌려 복도를 걸었다. 세 번째 문을 밀어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리네와 상화는 그제서야 현관에 두었던 짐을 도로 챙겨들었고, 곧 이어질 안내를 기다렸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특정한 지시가 아니라 찢어질 듯한 비명이었다.
“꺄아악!”
목소리가 끝을 내기도 전에 두 사람이 쏜살같이 달렸다. 열린 문 속으로 빨려들 듯 뛰쳐든 두 사람이 재빠르게 안을 살폈다. 이부자리에 누운 남자는 얼굴이 회빛이었고, 나정은 그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눈 감은 얼굴을 가리킨 나정이 울먹이며 말했다.
“조, 조, 종훈이가……”
리네가 나정의 옆에 앉아 손을 뻗었다. 턱 아래 목 어디쯤을 짚은 흰 손은 잠시간 멈췄다가 도로 떨어졌다. 리네의 양쪽으로 묶은 머리카락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달랑달랑, 한가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죽었어요.”
시체는 말이 없다. 종훈을 찾으러 왔던 일행은 말을 잃었다가 천천히 흐느꼈다. 그 사이에서 상화와 리네만이 자연스럽고 침착했다.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붙어 섰다. 주변으로 흘러 나가지 않을 정도로 소리를 죽인 목소리들이 나직하게 오갔다.
“2006년 9월 9일 오후 3시 12분. 사망 확인.”
“정말 신벌일까요?”
“그럴 리가. 살인 사건이다.”
“역시 탐정이 아닌 척하길 잘했죠? 파고들면 위협하는 사람들인걸요.”
“확실히 그렇군.”
아무도 몰랐지만 두 사람의 명찰 아래, 핀을 꽂았다가 뺀 듯한 구멍이 있다. 모범생인 그들이 늘 착용하고 있었을 물품은 뱃지로, 지금은 교복 자켓 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우수한 탐정을 양성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이립 고등학교. 소소하게 입소문을 탄 시골 마을에서도 어쩌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단체다. 멀지 않은 과거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수사권을 정식으로 인정받은 탐정이 존재하는 이 나라에, 그의 자격을 물려받기 위해 모인 특수한 반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공표되지 않았으나.
상화와 리네가 숨긴 것은 바로 그 자격을 물려받을 이들이 나눠가진 물품이다.